우물 밖 세상/터키

이스탄불-차낙칼레-트로이-아이발릭 2012.4.27

은초록별 2012. 5. 21. 02:05

 

첫 날 묵은 초루 지역 SILVER SIDE HOTEL

캄캄한 밤에 외딴 벌판에 떨궈진 느낌이었는데

새벽에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뜻밖에도 놀랍게 펼쳐진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

감사~~~~!!

유채를 닮은 이 노란 벌판을 이룬  꽃 이름은 `하르달'이란다.

돌아와 찾아보니 겨자???

 

 

 

 

 

 

 

겔리볼루 가는 버스창 밖 풍경

 

 

 

 

 

데키르다 휴게소 정경

 

 

 

 

겔리볼루

 

이스탄불 남서쪽 200km 지점,

다르다넬스 해협 동쪽 끝에 있다.

터키어로는 겔리볼루(Gelibolu), 영어로는 갈리폴리(Gallipoli)라 부른다.

중세 이래 상업 중심지로 발전하여 곡류시장으로 알려진 곳이며,

 곡류·피혁·치즈 등을 수출하고, 제분공업도 발달하였다.

 그 밖에 어업과 통조림공업도 성하다.

이곳은 고대 갈리폴리스의 땅으로 14세기 이래 터키령이 되었다.

그 후 1853∼1856년의 크림전쟁,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때에도

흑해의 관문에 위치한 탓으로 군사적 요지를 이루었다.

로마시대와 비잔틴 제국시대의 요새·유적·고분 등이 많이 남아 있으며,

이스탄불을 오가는 정기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다. 

 

겔리볼루에서 마르마라 해협을 건너 랍세키로 가면

유럽에서 아시아로...이동

 

 

 

 

 

 

차낙칼레

행정구역상 차낙칼레 주(Çanakkale Province)의 주도()로,

수도 앙카라(Ankara)에서 600km, 이스탄불(Istanbul)에서 230km 거리에 있다.

다르다넬스 해협사이에 두고 킬리트바히르(Kilitbahir) 시()와 마주보고 있으며,

 이 두 도시 간의 거리가 해협에서 가장 좁아 고대부터 해상 교통수단 및 해군 시설이 발달했다.

또한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해 목축업과 농업이 발달했으며 주요 농산물은 올리브이다.

최근에는 관광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시 외곽으로는 고대 유적지가 산재해 있는데,

특히 남쪽의 트로이(Troy) 유적지가 유명하며,

해안에 고대의 것을 재현한 대형 목마가 세워져 있다.

매년 8월에는 국제 트로이 축제 International Troy)가 개최된다.

 

트로이

 

마르마라 해협을 건너 트로이로 이동하다.

 

 

 

하인리히 슐리만 부인 

 

 

 세대 별 구역 표시

 

 

 

 

 

트로이

 

현실이 된 신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나를 두고

스파르타와 트로이 사이에서 10년 동안 계속된 영웅과 신들의 전쟁이야기.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묘사된 트로이 전쟁은 수세기 동안 인구에 회자되었으나

1871년 독일의 부호 하인리히 슐리만이 유적 발굴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전설로만 치부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들려준 트로이 전쟁에 대한 얘기에

깊은 영향을 받은 슐리만은 평생 트로이 유적 발굴에 대한 꿈을 키웠고,

결국 49세 되는 해에 유적 발굴에 성공,

트로이 전쟁이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실제 역사임을 입증했다.

트로이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신화이자 가장 유명한 고고학 유적지가 되었다.

트로이 유적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중간, 흑해와 에게해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에게해에서 6킬로미터 떨어진 히살리크 언덕 위에 있는데

바다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 외부의 침입을 막고,

교역을 하기에는 편리한 위치다.

문명 발달에 유리한 위치였기 때문에 이미 기원전 4천년 경부터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총 9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유적

유적은 총 9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층은 시대별로 형성된 도시 문명이다.

최하층인 제1층부터 이미 성벽을 만들고 금속 문화가 있었으며,

기원전 3천년 대 후반에 형성된 제2층은 높이 120m의 높고 견고한 성벽을 갖고 있었다.

길과 집터, 신전 터,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원형의 성벽은 규모가 작지만 견고하고 당시의 무기체계로는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성이었다.

현재 트로이는 일리아스 속 트로이 전쟁의 도시로만 널리 알려져 있지만,

수 천년 동안 에게해를 중심으로 유럽과 레스보스 섬, 소아시아 각지와 교류하는 문명의 중심 도시였다.

처음 발굴 당시 슐리만은 제2층을 트로이 유적이라 생각했으나 1930년대 미국의 블레겐이 재조사를 시행한 결과 기원전 1250년경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7층을 트로이 유적으로 여기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대지진과 트로이의 목마

트로이 유적에는 대규모 지진의 영향이 남아 있다.

트로이 10년 전쟁은 지진으로 인한 성벽 붕괴와 도시의 파괴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진을 관장하는 신은 포세이돈인데,

포세이돈을 상징하는 동물이 말이었기 때문에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해 트로이의 목마이야기가 탄생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현재 유적지 입구에는 일리아스 속 트로이의 목마를 재현한 목마상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

 

 

유적지에 만개한 `RODODENDRO'

한국에서도 근래에 눈에 익은 외래종 꽃이라 궁금하여 터키 가이드에게

이름을 알아보았다.

 

 

아이발릭 가는 길

창밖에 무리지어 먹이 활동하는 저 멋진 새들은 홍학?

 

아이발릭

터키 서부 에게해안의 항구도시로,   그리스 영토인 레스보스(Lesbos) 섬과 불과 20km 떨어져 있다. 소나무와 올리브나무가 울창한 낮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보인다. 해안에는 준다(Cunda) 섬을 비롯한 작은 섬들이 있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 지역의 역사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청동기 후기와 철기 시대의 집터, 도자기 등의 유물이 다수 발굴되었다. 비잔틴 시대까지 그리스 문화권의 영향력 하에 있었으나 13세기 이후 투르크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1922년에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기 이전까지는 상당수의 그리스인이 거주했으며, 그영향으로 오늘날 그리스풍의 건축물이 다수 남아있다.

고운 모래로 덮인 해안과 인근의 섬들이 해양 스포츠에 적합하고, 주변의 자연 경관이 아름다워 최근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어업과 관광업에 종사하며 주요 산물은 올리브 제품이다. 

 

 

 

 

휴가철이 아니라서인지 별로 아름답지도 정갈하지도않은

마치 한국의 대천해수욕장..분위기?

우리가 묵은 HOTEL MARE도 보인다.

어딜 가나 하루 다섯번씩 때 맞춰 들리는 `아잔 소리..."

 

매일 5차례 일정한 시각이 되면 담당 무슬림이 종탑 위에 올라가

성도() 메카를 향하여 기립하여 소리높이 외친다.

그 리듬은 이슬람 특유의 음악적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의 7절로 되어 있다.

 “알라는 지극히 크시도다.

우리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맹세하노라.

예배하러 오너라.

구제하러 오너라.

알라는 지극히 크도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느니라”. 

 

 

 

별 볼만하지 않은 곳에서 삼각대를 펼쳐놓고 야경을 찍다보니

어느 지나던 서양  로맨틱 할아버지가 달을 담으려 기다리고있냐고

친근하게 유머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