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세상/터키

아야 소피아 사원

은초록별 2012. 5. 23. 07:40

 

 

 

 

아야 소피아 사원의 네개의 미나레는

각각 다른 황제에 의해 만들어져서

그 모양이 다 다르다고한다.

 

 

 

 

 

황제만이 출입할 수 있다는 중앙의 황제의 문을 들어서면

천정 벽면에 이런 모자이크가 있다.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 발 아래

비잔틴의 황제 레오 6세가 무릎을 꿇고있고

왼쪽 원안에 가브리엘 천사,

오른 쪽 원안에 성모마리아를 그려넣었다.

 

 

 

 

 

 

 

 

술탄이 기도할 때 썼다는 정자

 

 

 

 

 

 

 

 

 

 

중앙 하단에 미흐랍이 보인다.

메카의 방향을 표시해준다.

기도할 때 미흐랍이 향하는 메카를 향해기도한다고한다.

하루에 네 번 씩...

아야 소피아 사원을 모스크로 사용하기 위해서

모든 모자이크에 회칠을 해서 덮었던 것을 벗겨냈다고한다.

그런데

이 그림은 데이시스라고 하는 기독교 미술 주제의 한 형태인데

가운데는 예수님,왼편에 성모 마리아,오른편에 세례 요한을 세운다.

데이시스는 청원,기도라는 뜻을 가졌는데

두 사람이 인류의 죄를 사하여주기를 기도하는 모습이라한다.

이 그림은 황금으로 모자인크 한 것을 회칠 한 것이 아니라

여기서 금을 떼어 먹으면 병이 낫는다 해서

이렇게 황금 모자이크를 떼어 먹었다고한다.

그림의 원형

 

 

이 그림에서는 중앙엔 예수님을 안고있는 성모 마리아와

왼쪽에 요하네스 2세,오른 쪽에 이레네 황후가 모자이크되어있다.

오른쪽엔 병중인 왕자의 모습..

왕자의 건강 회복을 기도하는 모자이크.

이 그림은 가운데 예수님,왼 쪽이 콘스탄티누스 9세,오른 쪽은 조에 황후이다.

조에 황후는 세 번 결혼을 했는데,남편이 바꾸리 때 마다

얼굴만 보수 작업을 했다고한다.

더 예뻐 보이게하기 위해서..

흘겨보시는 예수님의 눈동자가 흥미롭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의 모자이크

 

 

 

 

 

 

 

건물 안의 기둥들은 유스티아누스 대제가

에페소와 아테네의 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터키의 이스탄불에 소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잔틴양식의 성당.

 처음에는 그리스도교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터키 지배하에서는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이곳이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호칭되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교대성당으로 지어졌고,

 터키 지배 때에는 이슬람모스크가 되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인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성스러운 예지()’(하기아 소피아)에 바친 구당()(325) 대신에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새로운 구상으로 재건되었다.

안 길이 81m, 너비 70m의 광대한 3랑() 바실리카 플랜과,

지름 약 33m의 거대한 원개()를 교묘히 조합시킨 절충적인 원개 바실리카식 성당이다.

본당(nave) 중앙에 4개의 대지주를 세우고 그 위에 대형 아치와 펜덴티브 구법()에 의한

 대원개를 덮고 있다.

동서의 긴 방향으로 가해지는 횡압()을 대소의 반원개()로 받치고,

남북 방향의 횡압은 대지벽()(563 증설)으로 받친 매우 독창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설계자는 트랄레스의 안테미오스밀레토스이시도로스라고 하는데,

그들의 재능이 만들어낸 풍부한 내부 공간과 동산을 방불케 하는 장대한 외관을 보고

 헌당식()에 참석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감격하여

 “오! 솔로몬이여! 나, 그대에게 이겼노라!”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헌당 당시, 당내에 빛나고 있었을 6세기의 모자이크는 8∼9세기의 아이코노클래즘(성상 파괴운동) 때에

없어지고,

그 후에 제작된 모자이크도 15세기 이후,

이슬람교 투르크의 점거하에 거의 없어졌으나,

근년의 조사에 의하여 앞방[]과 2층 복도의 벽면에서,

석회칠 속에 그려져 있던 9∼13세기의 모자이크의 일부가 발견되어,

그 고도의 기술과 뛰어난 표현이 주목을 끌고 있다.

당내에는 대소의 주두() 조각으로 대표되는 비잔틴의 세련된 장식 조각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