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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림으로 읽는 현대(3)-야수파, 감정의 원근법

은초록별 2008. 1. 2. 08:10
이택광의 그림으로 읽는 현대 <3> 야수파, 감정의 원근법
마티스 색채는 선입견을 벗고 정서를 표현하기 시작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앙리 마티스의 '콜리우르를 향해 열린 창문'.


천박한 것이라고 비난받기도 했지만, 산업화는 그 비난에 대한 대가로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했고 사진술이 출현했다. 19세기 화가들이 아카데미 회화라고 부르며 경멸했던 그림들은 주로 부유한 귀족이나 부르주아를 위한 초상화였다. 그러나 이런 그림들은 사진술의 도래로 인해 막을 내렸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발전은 무신론의 대중화였다.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한 건 이념이었다. 이른바 '주의(-ism)'의 시대, 20세기가 도래한 거다.

인상파나 라파엘전파처럼, 이제 그림은 제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제도 밖에서 '운동'으로써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피카소가 큐비즘을 '발견'하기 전에 20세기 최초의 미술운동이라고 불릴 만한 사건은 바로 야수파였다. 큐비즘이 세잔느에 대한 헌사라면, 야수파는 반 고흐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야수파의 대표화가라고 할 마티스는 고흐뿐만 아니라 점묘파 화가로 유명한 시냐크나 '절규'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상징주의 화가 뭉크의 영향도 받았다.

야수파는 한마디로 공간감을 색감으로 표현하는 유파였다. 조금 복잡하게 말해서, 공간을 표현하는 기법에서 야수파는 색의 자율성을 확립했다고 일컬어진다. 이게 뭔 뜻일까? 마티스가 1905년에 그린 '콜리우르를 향해 열린 창문'은 최초로 야수파의 특징을 구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이 그림에서 풍경은 창틀의 구도와 뒤섞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보통 색채라는 건 풍경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형태와 면이 우선이었고, 색채는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부속물이었다.

인상파와 점묘파들이 인습적인 색채 기법을 벗어나긴 했지만, 이들에게도 여전히 색채는 자연의 본질을 표현하는 이미지였다. 그러나 마티스의 그림은 이런 색채에 대한 선입견을 벗어나서 색채 자체를 정서의 표현으로 생각했다. 물론 이 그림에서 마티스는 고흐나 고갱의 영향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림에서 드러나는 짧고 강한 붓의 터치가 그렇고, 원근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색감만을 통해 풍경을 표현하고 있는 게 그렇다. 이런 까닭에 최초의 작품이 중요한 거다. 말하자면, 이런 작품들은 대체로 새로운 게 어디에서 온 건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마티스 이외에도 칸딘스키와 야블레스키 같은 걸출한 러시아 출신 화가들과 루오나 블라맹크 같은 개성적인 프랑스 화가들이 가담하긴 했지만, 야수파의 생명은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원래 실험은 실험으로서 끝나는 법이다. 기법의 실험은 그 실험의 기법조차도 해체해 버리는 게 역사의 법칙이다. 야수파도 이 법칙을 거부할 수 없었다. 1908년 무렵에 야수파는 공식적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데, 이건 말 그대로 공식적인 차원에서 그렇다는 거다. 블라맹크를 제외하고, 야수파 화가들 대부분은 큐비즘과 비슷한 경향으로 발전하면서 초기의 주정주의를 점차 폐기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야수파는 큐비즘을 위한 인큐베이터 같았다. 바람이나 햇빛처럼 무형의 자연을 표현했던 인상파와 달리 야수파에게 자연은 인간의 흔적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야수파는 이상주의를 포기하고 현실에 충실하고자 했다. 현실에 충실하다고 해서 사물이나 풍경에 대한 세부 묘사나 색조에 집착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화가의 감정 표현을 색조의 대비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야수파라는 이름 때문에 이들을 '본능의 예술가'로 보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 이들이 강조한 건 본능이라기보다 감정의 즉흥성, 다시 말해서 내면의 자발성이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구성'은 중요한 것이었고, 그래서 나중에 큐비즘과 결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았던 거다. 이들에게 그림은 자신들의 느낌을 '응축'한 거다. 이를 두고 마티스는 '감정의 원근법'이라는 말을 썼다. 바야흐로 자연이 내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문화비평가·광운대 교수



입력: 2007.06.27 20:01 / 수정: 2007.06.27 20:05
출처 : 그림으로 읽는 현대(3)-야수파, 감정의 원근법
글쓴이 : 스카이블루(안종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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