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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림으로 읽는 현대(4)-피카소가 달랐던 이유

은초록별 2008. 1. 2. 08:10
이택광의 그림으로 읽는 현대 <4> 피카소가 달랐던 이유
묘사와 감정을 제거하면서 창작의 출로를 찾았다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앙리 마티스의 작품 '삶의 기쁨'
큐비즘에 이르러 그림은 더 이상 자연과 관계없는 것이 되었다. 인상파조차도 그림은 자연을 더 섬세하게 그리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 그림이 자연에게 결별 선언을 한 것이다. 피카소가 똑똑했다고 볼 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결정적 순간에 뭘 해야 할지 그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화가는 없었다. 앞에서 봤던, 큐비즘의 개막을 알리는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피카소는 마티스를 비웃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그림의 모티브는 앵그르의 '터키탕'에서 빌려온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직접적인 풍자의 대상은 마티스의 '삶의 기쁨'이었다. 도대체 뭐가 피카소에게 불만이었던 걸까?

피카소는 마티스의 감정 또는 정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건 '의도성'이라는 중요한 철학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좀 어려운 말이지만, 알고 보면 간단한 논리다. 우리가 뭔가를 의도할 때, 언제나 목표로 삼는 대상이 있게 마련이다. 이럴 때 우리가 의도하는 건 항상 생각이나 욕망, 또는 희망 같은 걸 숨겨 놓고 있다. 따라서 어떤 그림을 화가의 의도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그림에서 화가의 마음을 느끼거나 읽어낼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걸 철학에서 '현상학'이라고 부르는데, 여기는 철학개념에 대해 해설하는 자리가 아니니 이쯤에서 대충 그렇다는 것만 말하고 지나가겠다. 어쨌든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티스의 그림에 대한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이 그렇게 낯설지 않다. 사르트르는 마티스의 '빨강'을 예로 들면서, 그림이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을 통해 현실적인 감각을 불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굳이 '빨강'이 아니라도 좋다. 풍경화를 생각해보자.

풍경화는 우리에게 자연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풍경화라는 그림은 '진짜 자연'이 아니다. 플라톤이 예술가를 공화국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말한 건 이 때문이다. 그가 봤을 때 시인이나 예술가는 모두 사람들에게 가짜 자연을 진짜 자연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사기꾼들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21세기이지만 아직도 이런 플라톤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은 것 같다.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서 역사적 고증이 어떻다고 입방아를 찧는 시청자들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게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라, 이렇게 여전히 '예술'은 모름지기 진짜 같아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여전히 한국에서 대세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리 포스트모더니즘이니 시뮬라크르니 해도, 교과서에서 배운 미술교육의 습속은 참으로 오래 가는 법이다.

여하튼 피카소도 이토록 질긴 미술의 선입견을 그냥 두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과 마티스의 '삶의 기쁨'을 비교해보면 그가 얼마나 '의도 없는' 작품을 만들어내려고 했던 건지를 알 수가 있다. 여기에서 의도가 없다는 건 화가의 마음이 어떤 자연의 대상도 품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보통 초상화나 풍경화 같은 건 그림의 모델 노릇을 한 인물이나 자연이 항상 그림 밖에 있다는 걸 염두에 두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에서 '모방론'이나 '반영론' 같은 예술이론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그림은 언제나 환경과 분리되어 있는 이차적 산물이다. 환경이 먼저 있고 그림이 나중에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이런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도대체 뭔가? 바로 그림이 곧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림이 우리에게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환경이라는 것. 피카소가 보기에 마티스가 말하는 '감정의 원근법'도 알고 보면 진짜 대상을 모사하려는 의도의 산물에 불과하다. 이게 피카소는 못마땅했다. 사르트르는 마티스나 피카소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아마 이 말을 들었다면 피카소는 펄쩍 뛰었을 것이다. 피카소는 사물에 대한 정서를 표현하려고 했던 마티스의 생각보다도 사물의 형태를 단순하게 만들어서 묘사와 감정을 제거해 버리려고 했던 세잔느의 후기작에서 출로를 찾았다. 동료 큐비스트 브라크를 일러 "그는 나의 아내일 뿐"이라고 말했을 때, 피카소는 장차 자신의 이름이 빠진 미술사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음에 틀림없다.

문화비평가·광운대 교수

출처 : 그림으로 읽는 현대(4)-피카소가 달랐던 이유
글쓴이 : 스카이블루(안종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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