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트래킹

축령산-서리산 산행기 (산행대장)

은초록별 2007. 8. 8. 02:11
 

1. 그렇게 산행은 시작되어...


산행날짜를 잡아놓고 자꾸 일기예보에 눈이 갔다.지난 주초엔 흐림 또는 맑음,

주말에 다시보니 비,  떠나기 바로 전날 확인할땐 우쉬!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화요일(산행당일) 아침 6:53분 윤애에게 메시지가 왔다

<가? > 딱 한마디

<일단 가자 어쩌구 저쩌구... 주절주절>(본인의 답장)

<오케> 윤애의 6:58분 회신. 두마디두 귀찮은듯...


전철에서 한강다리를 건너며 과연 누가 나올까 걱정됐다.

100mm이상 비 예보인데... 순희, 윤애는 나오겠지? 상섭은? 혜정은?

그래도 친구들 4명이 모였다.

등산반 주멤버인 순희, 윤애 그리고 다리 다친후 2년만에 나온 창분.


버스 창밖으론 비가 후두둑 뿌리고...

며칠동안 내린 비로 흙탕물이 된 한강물은 노도와 같이 거칠게 흘러가고 있었다 

청평까지 50여분의 시간은 항상 그렇듯 만난 반가움과 재잘거리는 대화로

순식간에 지나가고 10시경 청평터미날 도착...분식집에서 라면 두개 시켜 넷이 

<너 국물 더 먹어? 여기 라면도 더 먹고?> 요런 모양새로 오손도손 나누어 먹고...

10시20분 수목원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비 많이 오면 걍 수목원 구경한 뒤, 어디 매운탕집이나 지글지글 돼갈 (돼지

갈비의 준말) 집에서 비오는 강을 바라보며 소주잔이나 기울이자는 본인의 

지극히 이성적이고도 로맨틱한(?) 의견을...

묵묵히 받아들이던 순희가 불현듯 <오늘 등산온거니까  걍 산에 오르자!>며

무시무시한(?) 제안을 한다. 서서가다 마침 자리가 두 개나서... 여친 셋이 들어가

앉으니 엉덩이 싸이즈가 딱 맞았는데... <어머어머 셋이 앉고도 자리가 남는다 얘!>

좋아라 하다가... 얼떨결에 (만장일치 합의하에) 산에 오르는 걸로 결정되고...

수목원입구에서 하차!!  (이때 비가 쫌만 더 세게  뿌렸으면 산행을 포기했을텐데~

아! 무심한 하늘이시여~)


키 큰 순서대로 해우소에서 시름을 던져버리고, 흡연족 00녀와 00녀는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를 근심어린 표정으로 (본인이 보기에) 바라보다 가늘고 기다란

담배 한대씩을 모락모락~ 사이좋게 꼬실리고는

순희는 아동용 미키마우스 우비를 입고~

윤애는 빨간 비옷을 입고~

창분은 보라색 우산을 들고~

난 일회용 비닐우비를 쓰레기통 옆에서 주워 입고는~

고난과 미지의 하루를 향하여 출발했다.

 

 

 


 

2. 폭우 속에서...


아침고요수목원- 수레넘어고개 길은 오래전 사람들이 다니던 교통로였겠지만 

요즘엔 이용되지 않은 길이다. 논을 가로질러, 발이 안보이게 수북히 자란 잡초를

헤치다 <여기 뱀나오는 곳이야~> 한마디 던지자 윤애의 동공이 똥그랗게 확대되며

(겁많은 윤애 ㅋㅋ.) <우리 딴 길로 가면 안될까?> 하소연...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기선 이 길밖에 없는걸... 

본인이 앞장서서 스틱으로 휘휘 저으며 한발 한발 전진... <뱀에 물려도 나만 물리고

죽어도 나만 죽자>고 본인의 헌신적 기사도정신을  평소(?) 하던대로 발휘! 헤헤

근데 경험으론 비 오는중엔 뱀이 잘 나돌아 다니지 않는다. 비 그치고, 해 나면

요것들이 몸 말리러 길가에 나무위에 주렁주렁 또아리를 틀고 계신다.

보통 뱀들은 사람 인기척 나면 먼저 도망가는데 까치살모사 같은 놈은 꼬랑지를

바짝 쳐들고 자리를 안비킨다. 스틱으로 한두번 치면 팍 째려보고... 

(쪼그만 것들이 독있다고 덤비기는...)


수레넘어고개- 축령산 오르는 길은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코스.

촉촉히 젖어 더욱 진한 칡꽃의 달콤쌉싸름한 향기를 맡으며,

원추리 짚신나물 으아리 영아자 달개비 등등등 야생화를 관찰하며,

평소와 다름없는 웰빙산행... 하지만 오늘산행에선 비가 내린다. 

좀 있으면 덜 내릴까 하는 기대를 자꾸 벗어나며 하늘은 더 어두워지고 빗줄기는

점차 굵어지고 있다. 윤애와 오랜만에 산행에 참가한 창분은 약간 힘들어 해 하는 표정.

어딘가 쉬면서 밥먹어야 하는데 비가 그치질 않으니...

빗물에 밥 말아먹을순 없고 어떻게 하나 속으로 고심!  비오는 와중에도

예쁜 야생화가 나타나면 순희는 사진찍기에 열중이다. 이제 순희는 야생화에

관하여 전문가 수준. 길 옆 함초롬이 피어있는 모싯대가 예쁘다.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에서 길을 벗어나 혹시 동굴이라도 있을까 여기저기 식사할

장소를 찾아본다.  동굴은 없고 오버행 바위에 기대 앉으니 그나마 비가 덜 들이친다.

오이소배기를 곁들인 회덮밥, 계란말이, 얼음이 씹히는 샤벳맥주, 순희가 가져온

목심돼지고기에 허브향 소금을 살짝 뿌려 노릇노릇 구운뒤 오이고추에 쌈장을

찍어 베어물으니 맛이 일품이다. 여친들이 하두 준비를 잘해와 내가 가져온

찰밥과 오이지, 볶음김치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이어 커피타임~~

헤이즐넛 원두커피 전문인 상섭의 부재가 아쉬웠지만 나름 콩다방의 맛을 재현하여

테스터스 초이스 부드러운 블랙 오리지날, 별다방의 풍미를 흉내내어 웰빙 밀크

커피를 만들어 여친들에게 바쳤다(?)  <음! 맛 좋네> 하며 다 마시고는 윤애가

무심코 한마디... 상섭이 커피 마시고 싶다.  ㅠㅠㅠ


배낭 챙기려 일어서다 카메라 가방을 살짝 건드렸는데 급경사면으로 굴러 떨어졌다.

때그르르르 바위에 쿵 (엄훠나) 다시 떼그르르 쿵쿵 시야에서 사라짐.

<뭐가 떨어졌어?> 순희,윤애,창분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카메라~>

<어머어머 어떡하니?>  <이미 떨어졌는데 지나간 일이지 뭐?> 태연스레 대답했지만

속으론 <흑흑 어떻게 장만한건데... > 속 깊고 자상한 순희가 나보다 먼저 내려가

어디 떨어졌나 미리 살펴서 손짓을 해주었다. 급경사를 엉금엉금 내려가 살펴보니

UV렌즈 박살, 스위치를 on 해보니 작동이 되었다 말았다...

깨진 렌즈를 손으로 급하게 딱아내다 유리쪼가리들이 손으로 파고들어 피가 나왔다.

고 와중에도 언제 샀나 잔대가리 재빨리 굴려보니 아직 일년 무상수리기간중...

히히 다행이다.


주능선까지는 한차례 올막을 더 올라야한다.

비는 더욱 거세지고 이제는 거의 퍼붓는 수준.

바닥의 흙길은 진흙탕이 되어 질질 미끄러지고... 한발짝 떼기가 어렵다.

창분이 나무를 붙잡고 오르질 못한다. 진흙탕에 한판 어푸러져  고운 얼굴에

이미 흙물이 잔뜩 튀겼다... 나도 한발짝 옮기다가 넘어져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중심잡기가 어렵다. 옆은 급사면... 떨어지면 아작이다~

방향을 틀어 풀쪽으로 올라 나무를 붙잡고 창분의 손을 겨우 잡아주었다. 

하얀 앙증맞은 창분의 손에 강한 힘이 실린다. 그렇게 위험을 벗어났다.


주능에 오르니 등산로는 작은 개울로 변해 물이 흘러넘친다. 비는 양동이로

퍼붓듯 샤워꼭지 밑에 서 있는듯 쏟아지고, 등산화 속은 물에 잠겨 철퍼덕 거리고

온몸은 물에 빠진 생쥐꼴...  그렇게  걷다 축령산 표지석이 눈에 나타났다.


<여기가 축령산이구나. 아 축령산 정상이야!!> 윤애가 떨리듯 가늘게 혼잣말을

되뇌였다.  정상에선 빗줄기가 쪼금 가늘어져서 고장난 카메라를 어찌어찌하여

기념 촬영을 했다. 축령산이, 오르기에 어려운 산이라 할 순 없겠지만 이 악천후

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꼭대기까지 오른 것이다.

 

이 사진 보고 느낀거 하나 - 창분이 알통은 과연 자랑할만 하구나 ㅎㅎ

 

이 뒤로 카메라는 아웃옵오더... 아웃

 

3. 근성가이들


우리는 축령산을 뒤로하고 다시 서리산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었다.

이미 베린 몸, 더 이상 비를 피할 이유도 없고...오늘 산에서 찐하게 놀아보는구나. 

산에선 사람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하긴 이런날 산에 오르는 놈(女ㄴ두 마찬가지)이

미친 놈이지! 

축령-서리 능선길은 널찍하게 시야가 탁 트이고 큰 나무들이 자생하는 좋은 길.

발바닥에서 찌거덕소리가 소리가 나 <우리 양말짜고 가자> 제안했더니 여친들,

별 소리 다하네 하는 표정이다. 본인이 시범을 보여 신발벗고 양말을 쫙 짰더니

수돗물에서 물나오듯 주르륵~ 다 함께 양말짠 뒤 꼬랑내(?)나는 손을 흔들며

서리산을 향하여 행군. 근데 우리 여친 등산대원들이 대단하다. 그만 하산하자는

불평 한마디없이 그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않고 상황을 이겨낸다. 

강한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던가?


커다란 잣나무 아래서 남은 과일 방울토마토와 파일애플을 나누어 먹고, 

서리산 까지 완주하고, 철쭉동산 테크에서 오늘 하루 독점한 우리만의 산을 만끽하고,

저녁 6시쯤  예정된 코스를 다 끝내고 내려왔다. 뒤풀이로 동동주에 부추부친개와 두부

김치를 먹고, 화장을 고친 여친들의 얼굴은 힘든 산행의 흔적이 전혀 없이 맑고 화사했다.


어제를 되돌아 보며,  함께 고생했던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한곡 골라 올린다. 

9월 산행때 다시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