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세상/미국,캐나다 동부

37.퀘벡 시내 2 <2015.9,28~10.8>

은초록별 2015. 12. 22. 18:44

 

 

 

 

 

 

 

 

 

 

 

 

 

 

 

 

 

 

 

 

 

 

 

샤또 프롱트낙 Château Frontenac 호텔...퀘벡시 랜드마크

샤토 프롱트낙(Château Frontenac)은 캐나다 퀘벡 주 퀘벡 시의 호텔로 캐나다 국립 사적지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루스벨트 대통령과 처칠 총리의 회담이 있었다.

테라스 뒤프랭 에서

 

 

 

 

 

 

 

 

 

이 계단 내려가면 LOWER TOWN

 

 

 

 

 

 

 

 

 

 

 

 

 

노틀담 성당 옆의 프레스코 벽화

17명의 역사적 인물들이 실감나게 그려져있다.

 

 

 

 

 

 

 

 

 

 

 

 

 

 

 

 

 

 

 

 

 

 

 

 

 

 

 

 

 

 

 

 

 

구 항구 지역

 

 

 

 

 

 

퀘벡

북쪽으로 허드슨 해협과 언게이바 만, 동쪽으로 뉴펀들랜드 주, 남동쪽으로 세인트로렌스 만과 뉴브런즈윅 주, 남쪽으로 미국, 서쪽으로 온타리오 주와 허드슨 만과 경계를 이룬다.

주도인 퀘벡 시는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몬트리올은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로 꼽힌다. 원주민은 유목생활을 했던 알공킨족, 세인트로렌스 강 북쪽에서 사냥과 낚시를 하며 살았던 몽타녜족, 주 남서부에 분포했던 크리족 등 3개 인디언 부족이었다.

그후 에스키모(이누이트)족이 허드슨 만 북쪽 지역에 정착해 낚시와 사냥을 하며 살았다. 1534년 자크 카르티에가 가스페에 정착하여 이 지역을 프랑스령으로 선포했지만, 뉴프랑스 식민지에 정착이 이루어진 것은 1608년부터였다. 사뮈엘 드 샹플랭은 인디언들이 퀘벡이라고 부르던 지점(지금의 퀘벡 시)에 최초의 유럽식 건물을 지었다.

프랑스인들은 알공킨족으로부터 비버 가죽을 사들이면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고, 알공킨족이 남쪽의 이로쿼이족과 전쟁을 벌이자 알공킨족 편에 서서 전쟁에 개입했다. 주 남부에 정착했던 영국인들은 이로쿼이족의 편에 서서 프랑스와 적대 관계에 놓였고, 계속된 갈등은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주도권 쟁탈전인 프렌치 인디언 전쟁으로 발전했다.

1759년 영국의 제임스 울프 장군이 퀘벡 시 공략에 성공함으로써 프랑스의 지배는 끝났다. 1763년의 선언에 따라 퀘벡 식민지는 영국령이 되었지만 프랑스인 주민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미국 독립전쟁중에 영국 지지파들이 캐나다로 이주해와서 지금의 온타리오 주에 있는 오타와 강 건너편에 정착해, 프랑스인 지역의 서쪽에 모이게 되면서 프랑스인 거주지와 영국인 거주지는 지리적으로 뚜렷이 구분되었다.

1791년 캐나다는 오타와 강을 경계로 퀘벡 주를 포함하는 로어캐나다와 현재의 온타리오 주에 해당하는 어퍼캐나다로 구분되었다. 주 전역에 걸쳐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거의 프랑스인이었지만, 프랑스인에게 강한 적대감을 가진 영국 상인들이 몬트리올을 지배하게 되었다. 영국 상인들은 1822년 영어사용 인구를 캐나다 전체의 다수인구로 인정하도록 하여 그에 따른 권리를 부여하는 연방법 제정을 시도했고, 그러한 영국인의 지배음모에 반발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은 1837년 루이 조제프 파피노의 지휘하에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은 진압되었고 1841년 새로운 연방법이 통과됨에 따라 어퍼캐나다와 로어캐나다가 통합되었다. 1867년 영국령 북미법에 따라 노바스코샤·뉴브런즈윅·퀘벡·온타리오 주 등의 4개주가 연합해 캐나다 연방을 형성했다. 그러나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민족주의는 퀘벡 주뿐만 아니라 캐나다 정치체제에 계속적인 특징을 이루어왔다.

퀘벡 주는 일종의 '대륙 끝지점'으로, 허드슨 만과 허드슨 해협에 의해 캐나다의 나머지 지역과 거의 분리되어 있다.

이 주는 주요지질구조에 따라 캐나다 순상지(또는 로렌시아 순상지), 세인트로렌스 평원의 인구가 조밀한 저지대, 애팔래치아 산맥 등 3개의 주요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인구밀도가 낮고 광물이 풍부한 로렌시아 순상지가 주 면적의 95%를 차지한다. 이 순상지는 다시 3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관광지이며 숲이 우거진 로렌시아 구릉지, 발육부진상태의 나무들이 있는 타이가 지역, 영구동토층으로 덮인 툰드라 등이다.

담수지역은 약 18만 3,890㎢에 달하며, 영구동토지역이 아니라도 대체로 매우 춥다. 몬트리올 평야에서는 눈이 12~13주가량 녹지 않으며, 세인트로렌스 강 북쪽 해안지역에서는 23주 동안 녹지 않고 남아 있는 일이 흔하다.

인구의 대다수는 프랑스 혈통이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낮은 출생률과 높은 이동률은 상대적 인구감소의 원인이 되고 있다. 프랑스계 외에 영국계와 아일랜드계가 있으며, 이탈리아인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인디언과 에스키모의 인구가 3만 9,000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광업·수력발전·임업 등이 발달해 있다. 1940년대까지는 농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그후 공업에 밀려났다. 로렌시아 순상지는 구리·금·아연·철·석면 등 세계 최대의 광물보유지로서 큰 경제적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주정부는 광물자원탐사를 위해 정부투자회사를 세우고 채광·가공 기술개발을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주에서 생산하는 광물 중 일부만이 주내에서 가공된다. 1963년 모든 전력이 국유화되었고, 전력관리를 담당하기 위해 생긴 하이드로퀘벡사(社)는 국내 최대의 전력생산기관이 되었다.

주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 이어 제2의 목재생산지이며, 50개의 펄프·제지 공장에서 매년 벌목된 목재를 대량 가공하고 있다. 캐나다와 북아메리카 대륙의 정교한 종합 교통망 때문에 주의 경제발전이 촉진되어왔다.

문화적·정치적 투쟁을 통해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민족주의 운동이 계속 전개되어왔다. 파피노, 루이 라퐁텐, 앙리 부라사, 리오넬 그루 대수도원장 등의 지도자들과 더불어 퀘벡 주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정치적 고향'이라는 고유한 사명을 지탱해왔고, 주정부는 책임을 가지고 프랑스 문화를 수호해왔다.

1936~57년에 총리로 재직한 모리스 뒤플레시스와 1960년에 총리로 재직한 장 르사주는 정치적으로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민족주의를 부추겼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퀘벡 해방전선은 1970년의 주 노동부장관인 피에르 라포르트의 암살을 포함해 1960, 1970년대에 수많은 폭력행위를 저질렀다. 1968년 르네 레베크는 르사주의 자유당을 탈당해 퀘벡 주의 독립을 주장하는 퀘벡당을 만들었다. 1976년 선거에서 레베크당이 승리했고, 주지사가 된 그는 프랑스어 사용을 장려하고 행정과 상업에서 영어 사용을 중단하는 법률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레베크의 독립계획은 1980년의 국민투표에서 좌절되었다. 그는 또한 1982년의 헌법에 유일하게 반대한 주지사였는데, 퀘벡 주 대법원은 그가 요청한 거부권 행사를 수락하지 않았다. 퀘벡당은 레베크가 물러난 뒤에도 계속 집권하여 1985년 주선거에서 패배할 때까지 정권을 유지했다.

주정부는 4년마다 18세 이상의 성인이 참여하는 보통선거를 거쳐 단원제 의회로 구성된다.

의회의 다수당 총수가 주지사가 되며 내각을 구성한다. 부총독은 영국 왕실을 대표하는 캐나다 총독이 선출한다. 법관은 연방정부가 임명하지만, 퀘벡 주의 민법은 프랑스의 대륙법을 따른다. 주는 퀘벡 주 치안대라는 자체 경찰력을 갖추고 있다. 11학년까지의 초등·중등 교육은 무상 의무교육이며 학교별로 프랑스어나 영어로 수업이 진행된다. 주의 대학교육은 종합대학 입학자격이 주어지는 2년제의 일반교육과정과 3년제의 전문직·기술직·일반직업 교육과정으로 나뉜다.

퀘벡주립대학교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공립대학이며, 몬트리올·시쿠티미·트루아리비에르·루앵·헐·리무스키 등에 캠퍼스를 두고 있다. 이 대학교는 또한 텔레비전 공개대학 강좌와 연구소, 성인대상 평생교육과정 등을 운영한다. 1961년에 창설된 문화부는 박물관·극단·발레단·음악단체·출판사 등에 재정적인 지원을 한다.

몬트리올에 있는 캐나다 국립연극학교는 프랑스·영국의 전통 및 현대 연극과 2개 국어 사용 연극을 모두 장려하고 있으며, 퀘벡 시는 영화산업의 중심지이다. 퀘벡 주는 17세기 뉴프랑스 식민지에 뿌리를 둔 대중가요인 샹송으로 유명하다. 잘 알려진 샹송 가수로는 펠릭스 르클레르크, 질 비뇨 등을 들 수 있다. 안 에베르, 로제 푸르니에, 이브 테리오 등 프랑스어 사용 작가들과 모르드카이 리슐레르, 레너드 코언, 휴 매클레넌 등 잘 알려진 영어 사용 작가들이 퀘벡 주 출신이다.

주의 프랑스계 화가들은 인상주의를 받아들여 정치적·문화적 주제를 표현했다. 에스키모족과 프랑스인의 전통적인 나무 조각 또한 유명한데, 프랑스인의 나무 조각 예술은 17세기에 교회 내부를 장식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스포츠로는 특히 하키, 캐나다 풋볼, 야구 등이 유명하며, 모두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